하이데거, 하버마스, 그리고 이동전화 - 10점
조지 마이어슨 지음, 김경미 옮김/이제이북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주위를 쭉 둘러보자. 아마도 사람들의 절반이 핸드폰으로 게임,전화, SMS, 카메라 등등의 기능을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는 사람이 제일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동 전화가 우리 삶의 모습을 정말 빠른 시간에 상당히 많이 바꾸어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새로운 기기에 익숙해지고 이제는 새로운 기기가 아닌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서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이 우리 생활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동 전화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 그리고 이동 전화로 통해서 인간의 중요한 부분인 ‘의사 소통’ 이라는 것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또한 20세기의 철학자인 하이데거와 하버바스가 말한 의사 소통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다

의사 소통의 시대
하이데거는 “철학적 진리는 모든 인간을 의사소통이 가능한 타자로 보고 있으며, 그들과 의사 소통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 즉 인간의 본질은 의사 소통이며, 의사 소통을 원활히 하는 인간이 참된 인간상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선을 추구하는 인간이 참된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과 앞에 말은 같은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선을 추구하는 것 정도로 의사 소통을 원활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에 한 명인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것이다.
위의 하이데거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지금의 세상은 정말 ‘선’하게 ‘보이는’ 세상으로 발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도 우리 나라는 그 최전선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나라의 이동전화 보급률은 64% 을 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동전화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의사소통과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던 ‘질’적(?) 의사소통과는 개념이 다르다. 이것에 대한 것은 뒤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지금이 의사 소통의 시대라는 것이다.

의사소통이란?
그럼 의사소통이 중요하고 지금은 의사소통의 시대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의사소통은 과연 어떤 것인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일반적으로 해석하기에는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듣는 사람이 논의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면 된다’ 라고 했다. 그리고 하버마스는 진정한 의사소통의 핵심은 “이해” 이며, 이해 달성을 지향하면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의사소통을 정의하였다. 이 두 철학자의 주장에서 공통점이 어떤 점일까? 지금 우리가 딱 생각하기에 의사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를 우선 내뱉는 것, 예를 들면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이데거와 하버마스가 생각하는 의사소통에서의 공통점은 듣고 있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청자가 이해를 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했고, 하버마스는 이해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내뱉는 것으로는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동 통신의 발전, 이동 전화의 발전으로 인해 현재의 의사소통은 약간 다른 개념을 지니고 있다. 이동전화적 의사소통의 개념은 개인이 의사소통을 지배한다고 되어있다. 이는 영국의 통신회사 광고에 ‘이동전화 기술은 당신으로 하여금 스스로 의사소통 방식을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새로운 의사소통의 개념이다. 개인이 자유롭게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의사소통을 지배하는 것, 자신의 의사소통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말은 참 멋져 보인다. 자신의 의사소통을 자기가 지배한다! 얼마나 멋지냐 요즘 시대에 사람을 홀리기 참 좋은 말일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의사소통의 원론적인 개념은 하이데거와 하버마스의 개념을 따라야 할 것 같다. 의사소통은 개인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하고, 서로 간의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서로 간의 이해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왜, 무엇을 그리고 누가 의사소통하나
이동전화적 견해로 의사소통을 왜 하느냐 고 질문했을 때의 답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의사소통을 한다. 결론적으로 의사소통은 단지 그 욕구를 하는 수단으로서 존재한다. 나는 음식을 원하고 그것을 시키기 위해서 의사 소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욕망이나 의도를 알리기 위해” 의사소통 한다고 하였다. ‘욕구를 하기 위해서 의사소통 한다’ 와 ‘욕망을 알리기 위한 것’ 두 가지말의 의도를 파악하기는 아주 힘들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도 결국 욕망을 위한 것이니 욕구를 위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단순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은 의사소통이 아니라고 하였고, 우리의 의사소통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것을 주 관심으로 할 때 진정한 의사소통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접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접촉하는 것이다. 정보의 빠른 전달이 중요해질 대로 중요해진 시대이지만, 그 정보가 의사소통 되어서 아무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사소통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당연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 위에 내 욕망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효과를 보지 못했다.’ 는 식으로 기술하는 것 자체도 이미 내가 너무 이동전화화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새롭게 느꼈던 점은 ‘누가’ 의사소통 하느냐에 대한 부분이다. 이동전화적 관점에서 의사소통은 개인과 다른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전화로 구성된 시스템이 하는 것이다. 목소리는 데이터로 전송되며 이동전화의 시스템을 통해서 전송된다. 그것이 이동전화적 체계이다. 극단적으로 이동전화적 개념에서 보면 의사소통을 할 때 인간이라는 존재는 필요하지 않는다.

올바른 의사소통과 그 미래
이 책의 마지막에 보면, 하버마스와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가 말하는 의사소통의 세계가 되어야지 우리의 미래가 올바른 의사소통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그렇게 되어야지만 미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은 2001 년에 지어진 책이고 우리가 지금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우리의 의사소통에 대해서 반성해보자.
우리는 이미 핸드폰 없이는 불편해서 살기 힘들고, 핸드폰으로 단문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핸드폰으로 스팸 메일과 비슷하게 광고 전화와 광고 문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동전화화 된 것이 네트워크를 통한 광고가 아닐까 싶다. 주로 1:1 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만들어진 핸드폰과 이메일 같은 시스템, 즉 우리가 말하는 의사소통의 자유를 위한 시스템들이 광고를 뿌리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을 단순히 네트워크에 접속되어있는 한 개체로 보고 그 개체들에게 광고를 보내게 만든 것이다. 이동전화와 네트워크는 분명히 우리의 의사소통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언제 어디서나 라는 개념, 자신이 필요할 때 항상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이런 기기는 상당히 진보적인 것이며, 기술적으로 인간에게 주는 엄청난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기기들을 사용하면서 조금씩 젖어드는 이동전화화는 우리에게 예전과는 다른 의사소통 방식을 만들어준다. 미래가 되면 달라질 수 도 있지만, 언제든지 어디서나 단순한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의사소통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의사소통은 단순히 정보의 흐름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서로 서로를 이해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이동전화라는 기기를 이용해서 우리의 의사소통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단순히 양적으로 팽창하던지 기술적 진보로 인해 편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면 우리의 의사소통은 점점 메말라갈 것이며 나중에 우리기 피부로 우리의 의사소통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 고치려고 하면 그때는 이미 너무 익숙해져서 힘들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심각성을 느끼고 이동전화를 이용하면서도 의사소통을 풍부하게 하는 방향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 해결 방법의 예는 어떤 것이 있을까? 2004 HCI 학회에서 발표한 것 중 SKT 의 아트센터 나비의 project 에서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이야기를 만든다.” 같은 것이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이 project 는 이동통신을 문학과 연관시키면서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이해를 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으로 새롭게 변모시킨다. 여러 면에서 이러한 것들이 많이 발전되면 우리의 의사소통이 이 책의 작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쉽게 황폐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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