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두는 여자 - 10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현대문학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중국작가의 소설은 한번도 읽은 적이 없다. 나에게는 약간 거리가 있는 문학으로 느껴졌고, 존그리샴, 딘R 쿤츠, 마이클 클라이튼과 같은 작가들을 좋아하는 나에겐 중국작가들의 이야기가 한국작가들의 이야기처럼 어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분의 장바구니를 훔쳐본 후, 이 책을 구입했다. 구입한 후 바빠서 읽지 않고 있다가 졸업논문을 다 쓰고 읽었다. 그리고 책이 마음에 들었었고, 다시 읽어 본 후 리뷰를 쓴다.

바둑 두는 여자에는 두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어릴 적부터 바둑을 배워서, 바둑을 두는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바둑을 두는 중국 소녀. 그리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으로 광장에서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는 일본인 장교. 일본이 중국을 침공하는 시점에서 중국 소녀는 복잡한 중국을 경험하면서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일본인 장교는 국가를 가슴 속에 살아가지만,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낀다.

사랑을 배우다가 허전함을 느끼는 중국 소녀, 국가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지만 허전함을 느끼는 일본인 장교, 이 둘은 우연한 기회에 바둑을 두는 광장에서 만나 바둑을 둔다. 둘은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편에 가깝다. 한 수, 두 수 바둑을 두면서 그들은 바둑으로 대화를 한다. 만화 고스트바둑왕에서 고수들이 바둑 한 수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들은 바둑으로 대화를 한다. 물론 그 대화가 그렇게 자세하게 묘사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들은 한 수 한 수 긴장감있는 바둑을 두면서 마치 줄타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듯 했고, 끝에 중국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수 있다.

가족이라는 굴레, 학교라는 굴레, 그리고 국가라는 굴레 이런 것들 사이에서 그들은 바둑으로 대화를 하면서 사랑을 한다. 사실 사랑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결과가 생기긴 하지만, 그들이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에서는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두 사람의 사랑의 과정에 대해서 별로 언급이 없다.

중국 소녀와 일본인 장교가 바둑을 둔 다음 p.264
나는 눈을 내리깔고 인력거꾼의 등만 바라본다.
인력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 뒤로,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내일 오후에 바둑 두러 오실 거죠. 그렇죠?"
내가 고개를 든다. 눈동자 위로 눈물이 흘러 시려온다. 나는 눈물에 가려 뿌옇게 변한 밤의 풍경을 삼킬 듯 바라본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눈물을 말려야만 한다. 행인들의 그림자가 인도 위에서 비틀댄다.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다. 창을 통해 수백개의 삶이 비친다.

책은 결국 혼란스러워하는 중국 소녀, 묵묵히 나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혼란스러워하는 일본인 장교, 이 책은 그러한 혼란스러움과 함께 사람이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었던 것 같다. 성장 소설치고 상당히 괴로운 성장을 보여주는 마음 아픈 성장 소설이지만 말이다..

중국소녀가 언니인 위에쭈에게 하는 질문 p.127
"사랑에 빠졌다는 걸 어떻게 알아? 어떤 기분이 들어?"
" 우선, 네 주변 사람들을 모두 잊게 돼. 가족이며 친구들이 눈에 안 들어오지. 밤낮으로 오로지 한 사람만 생각하게 돼. 그를 볼 땐 네 눈이 빛으로 가득 차지만, 그를 보지 못할 땐 그의 모습이 네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게 돼. 매순간 그가 무얼 하는지, 그가 어디에 있는지 묻게 되지. 넌 그의 삶을 상상해내고, 오로지 그만을 위해 살게 돼. 네 눈은 그를 위해 보고, 네 귀도 그를 위해 듣고..."
"이 첫 단계에는 각자가 상대방의 감정을 몰라. 가장 애절한 순간이지. 이어, 그들은 서로 마음을 열게 되고 짧은 순간 미친 듯한 행복을 맛보게 돼. 좋은 시절이 다 지나면 폭풍이 몰아치지. 연인들은 갑자기 어둠에 빠져들게 돼. 어둠 속을 더듬으며 기어다니게 되는 거야. 그러면서 서서히 늙어가지. 너도 알게 될 거야. 사랑을 받거나 사랑을 하게 되면 너도 하얗게 달궈진 그릴 위에서 살아가는 고통이 어떤 건지 알게 될 거야. 더 이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될거야."

우리나라 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시대상인 해방전후, 전쟁, 일제 시대와 같은 큰 역사적 사건들처럼 중국에도 천안문 사태, 그리고 외국 문물이 들어오던 시기, 중일 전쟁 이런 것들이 중국 사람에게 큰 이슈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문학에서 느끼기에는.. 바둑 두는 여자도 그 큰 사건 중 하나인 중일 전쟁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역사적 사건이 중요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갈등을, 그리고 개인의 모습을, 생각을, 보여주고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져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여러 모로 과거의 내가 읽었던 소설들과는 조금 많이 다른 느낌이 든다. 신선한 기분.


PS. 바둑 두는 여자는 8세때 시를 쓰기 시작하고, 9세때 첫 시집을 발표했다는 72년생 여성 소설가 샨사의 것이다. 정이현이 yes24 인터뷰에서 책을 추천하기도 하였으며, 산문집에서도 샨사 책을 추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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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7월 21일 09:34 2008년 07월 21일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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