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오쿠다 히데오 "최악"

문자로 경험한 이야기 | 2008년 07월 14일 20:50 | 익살
최악 - 8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북스토리

오쿠다 히데오의 새 소설 "최악"
약간 마초스러운 느낌이 나는 표지에 "최악"이라는 강한 느낌의 제목. 기존의 오쿠다 히데오 책은 상황에 대한 아이디어보다는 인물에 대한 아이디어가 상당히 독특하며, 사람들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을 비틈으로써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이번 소설 "최악"은 기존의 오쿠다 히데오 책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 나는 책이다.

책에는 모두 3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번갈아가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첫 주인공은 가와타니 신지로. 가와타니 철공소라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자신을 포함하여 세명의 직원이 일한다. 버블 경제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급격히 돈을 벌다가 몰락한 반면에, 신지로는 위험한 투자를 하지 않고 정말 개미와 같은 자세로 부지런히 일을 한 덕에 그렇게 크지 않은 회사지만, 성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하청의 하청, 그 하청의 또 하청, 가끔은 그 밑의 하청의 하청을 받아서 일을 하는지라, 주말에도 빠듯하게 일을 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일을 받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무리한 요구라도 결국 끄덕거리면서 받아올 수 밖에 없는 일이 많다. 그렇지만,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는 ... 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철공소 주변으로 생긴 주거지역 때문에 소음 문제로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겪고있다.

두번째 주인공 후지사키 미도리, 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반복적인 일을 하며, 자신의 직업을 약간은 지루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을 열심히 다녀야 한다는,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안된다는 맏딸 특유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남자 친구는 없으며, 은행에 다니는 잘생기고, 잘풀리기로 정해져 있는 다카사키라는 남자 사원을 그냥 마음에 두고 있다. 은행은 자신에게 밥벌이 이상의 곳이 아니다. 은행의 전반적인 시스템은 불합리하게 되어있으며, 은행의 윗사람들은 항상 마음대로이다. 그나마 좀 좋은 윗 사람도 있으나, 아랫 사람을 위하는 사람은 없다. 신경쓰이는 가족으로 여동생이 하나 있으며, 여동생은 집안에서 말썽꾸러기라서 그에 대한 걱정도 하고 있다.
세번째 주인공 가즈야. 동네에서 빈둥거리면서 파칭코를 들락날락 거리는 건달이다. 집안이 불우하여 집을 나와 혼자 살고 있으며, 가출했다고 해서 그의 부모가 그를 특별하게 찾지 않았다. 파칭코에서 나이든 여자를 만나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서 작은 도둑질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특별한 일은 없다. 책 초반, 파칭코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데 그 이유는 계속 귀에서 이명 (ringing in the ears)이 들려서 아예 시끄러운 파칭코를 찾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크게 해치지도 않으며, 그렇게 꿈이 있는 것도 아닌 그런 사람이나, 일이 꼬여서 야쿠자와 엮인다.

이 세명은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470페이지가 될때까지 서로 만나지 않는다. 아니, 만나긴 하더라도 그렇게 크게 이야기가 합쳐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470페이지 까지는 이 세 사람이 얼마나 우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살기 힘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묘사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정말 몇번이나 답답해졌고, 몇번이나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 사람들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소설에서 처음 본 것이 아니자나!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현실적으로 내 주위에서 아니,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일들로 우울해지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끔찍한 유아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글을 보는 것보다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사장을 묘사한 것이 나한테 훨씬 많이 와닿는다. 그리고 오쿠다 히데오는 주인공 세명에게 작은 우울한 일이 합쳐지고 엉키고, 각각의 사건에서 헤어나오려고 들인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날을 만들어버린다.

그렇지만, 이렇게 삶이 힘들 때 많은 어른들은,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부담스럽게 만드는 격언들은 그래도 삶은 살만한 것이야. 힘내. 라고 이야기 한다.
단편적인 예로 은행에 자주 들리는 노인이 미도리에게 어느 날 이렇게 말한다.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건 인생의 중심에 서 있다는 증거야."
"네?"
"내 나이쯤 되면 안 좋은 일 조차 없어. 워낙에 갈 곳이라야 병원하고 도서관하고 은행밖에 없거든. 그런 곳을 빙빙 돌아봤자 무슨 일이 생기겠냐? 이번 연휴 때는 정말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더라니까. "
"아무튼 안 좋은 일이라도 아무것도 없는 거보다 나아."

이렇게 말하는 노인분이 바로 내 앞에 있다면 모두들 주인공 미도리처럼 끄덕여주겠지만, 속으로는 당장 좋지 않은 일이 생겼는걸..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책 중반에 가즈야는 이렇게 말한다
"불행해지더라도 나는 1억 엔이 있었으면 좋겠다."
돈으로 행복해지지 않아.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아.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어. 라고 이야기 하고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은 10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당장 10억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경제적으로 살기 힘들고, 사랑으로도 살기 힘들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살기 힘들고, 직장도 살만한 곳이 못된다. 오쿠다 히데오는 3명의 주인공으로 그 모든 인생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과거 그의 소설처럼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은 좋아. 라는 식의 웃음으로 억지로 연결하지 않는다. 마지막 100페이지 정도는 기존의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그래도 앞의 400여 페이지는 우울하다. 기존의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과는 확실히 다르다. 경쾌함이 느껴지는 스피디함은 여전하나, 내용이 추천하기는 어렵다. 나는 읽고 우울했으니까. 힘들다... 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세상에 읽어볼만한 책은 아닌 듯 하다. 물론 잘 썼다. 그래서 우울하다.

PS. 책을 읽으면서 중간에 어지러울 때마다 내 생애 최악이었던 순간 BEST3 을 꼽아보았다. 그리고 최고인 날 BEST3 을 생각하려고 해보았다. 최악은 쉽게 떠오르나, 최고는 잘 떠오르지 않더라. 나는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인데도 그랬다. 그리고 최악의 순간 BEST3 을 떠올리면서 극도로 우울하더라.

* 익살 블로그 관련 링크
오쿠다 히데오의 "스무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의 "라리 피포"
오쿠다 히데오의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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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7월 14일 20:50 2008년 07월 14일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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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한아이 2008년 07월 14일 22:52

    나도 10억... -_-;;
    정자동 파크뷰 원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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